1. 슈리성
* 首里城公園(슈리성 공원)
슈리성은 류큐 왕국의 정치와 외교, 제례가 이루어지던 화려한 성이다. 창건은 14세기경으로 추정되며 1429년 쇼하시가 오키나와 남, 중, 북부로 나뉘어 있던 삼산을 통일하면서 류큐 왕국의 성으로 사용했다. 류큐왕국은 아시아 각국과 활발한 교류를 이루며 번영했으나 1879년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류큐 처분을 받으며 역사의 막을 내렸다.
슈리성은 여러 번의 화재와 권력다툼, 전쟁을 겪으며 소실과 재건이 반복되었고, 오키나와 전쟁 후에는 류큐대학이 세워지면서 많은 유적이 없어졌다.
1989년부터 본격적인 발굴조사와 복원작업을 시작해 마침내 1992년 슈리성 공원을 개장했다.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으나 등록된 것은 '슈리성 성터'이며, 복원된 건물이나 성벽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있지 않다.
정전 등의 중심 건물만 유료 구역으로 공원 내부는 자유롭게 돌아볼 수 있다.
해발 120m의 고지대에 위치해 나하 시내가 훤이 내려다보이는데 슈리성 내 니시노아자나에서 보는 석양은 하나의 관광포인트로 볼 수 있다.
-슈리성 공원 둘러보기-
*守礼門(슈레이문)
슈리성 공원으로 들어가는 문. 일본 2000엔권 지폐의 앞면에 있는 모델이 바로 이 슈레이문이다. 창건 시기는 류큐 왕국의 제4대 왕 때라고 알려져 있다. 오키나와 전쟁 때 소실되었으나 1958년 복원되어 1972년에는 오키나와현 지정 유형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문 중앙에 걸린 현판에 쓰인 '守禮之邦(슈레이노쿠니)'는 '류큐는 예절을 중시하는 나라'라는 뜻이다. 중국에서 책봉사가 오면 국왕을 비롯한 고위 관직들이 슈레이문까지 마중 나와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園比屋武御嶽石門(소노향우타키이시몬)
슈레이문을 지나면 왼쪽에 보이는 석문이다. 소노항우타키는 국왕이 외출할 때마다 안전을 기원하는 장소였다고 한다. 그 앞을 지키는 문은 류큐 왕국의 대표적인 석조 건축물로 오키나와 전쟁 때 소실되었으나 옛 석문의 잔해를 사용해 북구 작업을 이뤄냈다. 2000년 슈리 성터 등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지금도 오키나와 현지 사람들이 기도를 드리기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歓会門(간카이문)
슈리성의 첫 번째 문. 중국의 책봉사 등 귀한 손님을 환영한다는 의미에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1500년 전후에 만들어져 오키나와 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74년에 복원했다. 중국풍 아치 석문과 문 양쪽을 지키는 시사가 인상적인데 오키나와 사람들은 이 시사가 악귀를 쫒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龍樋(류히)
즈이센문을 향해 완만한 비탈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쪽에 용이 물을 뿜는 형상의 샘물이 보인다. 국왕과 책봉사 등의 식수로 쓰이던 물이다. 용 조각은 당시 재상이 중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약 500년 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동전을 던지며 행운을 빌기도 한다. 옆에는 중국의 책봉사들이 류히의 맑은 물을 칭송하며 남김 시비가 있다.
*瑞泉門(즈이센문)
슈리성의 두 번째 문. 즈이센은 '경사로운 샘'이라는 뜻으로, 문 앞에 있는 류히를 빗대어 즈이센문이라 이름 지었다. 간카이문과 달리 석문 위에 바로 주홍빛으로 칠한 망루를 올렸는데 이는 일본의 축성 양식과 닮은 것이다. 1470년경 창건되었다가 오키나와 전쟁 때 소실되었고 1992년 복원되었다.
*漏刻門(로코쿠문)
슈리성의 세 번째 문. 로코쿠는 물시계를 가리키며 이 문 앞에서는 망루에 수조를 설치해 물이 새는 양으로 시간을 쟀다. かご居せ御門(가고이세우조문)이라고도 불리는데, 높은 신분의 사람도 여기서부터는 가마에서 내렸다는 뜻이다. 15세기 창건되었고 쇼와시대에 노후한 것을 철거했다가 1992년 복원했다. 문을 지나면 광장이 나오는데 탁 트인 경치가 일품으로 동중국해가 내려다보인다.
*日影台(니치에이다이)
로코쿠문의 물시계와 함께 쓰였단 해시계. 이 해시계로 정오와 그 전후의 시각을 재고 물시계로 자세한 시각을 재 북을 쳐서 알렸다. 해시계로 재는 시각은 현재 일본 표준시간보다 30분 늦다.
*万国津梁の鐘(반고쿠신료노카네)
류큐 왕조시대 정전 앞에 설치되어 있던 종이다. 종에는 '류큐는 남해의 아름다운 나라이며 조선, 중국, 일본의 사이에서 무역을 통해 번영하는 국가이다.'라는 내용이 새겨져있다고 한다. 당시 류큐 왕국의 번영과 긍지를 엿볼 수 있는 유물이다.
*広福門(고후쿠문)
슈리성의 네 번째 문. 니치에이다이 앞에 있으며 유료 입장권을 판매하는 장소로 쓰이고 있다. 문을 통과하면 시타노우나가 나오며 정전으로 향하는 호신문과 류큐 개벽 신화에도 등장하는 성지 首里森御嶽(스이무이우타키)를 볼 수 있다.
*首里森御嶽(스이무이우타키)
난조의 세이화우타키. 수다카 섬의 구보우타카와 함께 류큐 창세신화의 신 아마미키요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7개의 우타키 중 하나이다. 슈리성 내에는 도타케라 불리는 10개의 참배소가 있었는데 스이무이우타키는 그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국왕이 성 밖으로 나갈 때 신녀들이 이곳에서 기도를 드렸다고 한다.
참고로 '스이무이'는 슈리성의 별칭이라고 한다. 스이무이우타키는 슈리성이 지어지기 전부터 먼저 있었고 이후에 슈리성이 지어졌다고 한다.
*奉神門(호신문)
슈리성 정전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문. 출입구는 3개지만 중앙의 문은 국왕이나 책봉사 같은 귀빈만 지날 수 있었고 좌우의 문은 신하들이 이용했다. 메이지 시대에 철거되었다가 1992년에 복원되었다.
*御庭(우나)
슈리성의 중심이다. 호신문을 지나면 정면에 정전, 왼쪽에 호쿠덴, 오른쪽에 난덴과 반도코로가 있는데 이들에 둘러싸인 광장이 바로 우나이다. 각종 의식과 연회 등의 무대로 사용되었으며 가운데 있는 우키미치라는 길을 국왕과 책봉사 등의 한정된 사람만 지날 수 있었다.
*正殿(세이덴)
슈리성에서 가장 중심적인 건물이자 류큐 왕국 최대의 목조건축물이다. 정전의 주홍빛 건물과 푸른 하늘이 강항 대비를 이루며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한다. 1층은 국왕이 정치의식을 2층은 친족과 궁녀들이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였다.
창건은 14세기 말경으로 추정되며 여러 차례 소실과 재건을 반복하다 1992년에 현재의 모습과 같이 복원되었다. 정전의 건축은 중국의 궁정 건축과 일본의 건축 양식을 기본으로 하면서 류큐의 독특한 디자인이 반영되어있다. 세이덴을 바라보고 왼쪽이 행정업무를 보던 호쿠덴, 오른쪽이 보초를 서던 반도코로와 난덴이다. 세이덴과 난덴 사이에 있는 구가니우둔은 왕의 방으로 니케우둔은 거실로 쓰였다.
세이덴은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국왕을 태양으로 여겨 항상 동쪽을 등졌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西のアザナ(니시노아자나)
성광의 서쪽. 해발 약 130m에 세워진 전망대이다. 류큐 왕조시대에도 전망대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나하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뷰포인트로 날씨가 좋으면 멀리 있는 게라마 제도까지 보인다. 이곳에서 보는 석양이 특히 아름답다고 하여 일부러 해질 무렵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龍潭(류탄)
1427년에 조성된 인공 연못. 조성된 당시 서민들의 휴식처이자 중국 책봉사들을 위한 뱃놀이와 연회가 열리던 곳이다.
류탄을 둘러싼 무성한 수풀 너머로 보이는 슈리성은 또 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鑑池·弁才天堂(엔칸치·벤자이텐도엔)
엔칸치는 1502년에 조성된 인공 연못으로 슈리성의 샘물과 빗물이 이곳으로 모이며 여기서 넘친 물은 류탄으로 흘러간다. 15세기 말 무렵에 조선의 왕이 보낸 경전을 모시기 위해 건물과 다리를 지어 보관했는데 1609년에 사쓰마 침입으로 파괴되었고 1621년에 새 건물을 지어 근처 엔카쿠지에 있던 벤자이텐상을 모신 이후 건물은 벤자이텐도라, 다리는 선녀 다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2. 슈리성 주변 둘러보기
*玉陵(타마우둔)
류큐 왕족의 묘지. 초재 국왕을 모시기 위해 지어졌다. 동서로 이어지는 자연 절벽에 구멍을 뚫어 만든 것으로 총 3개의 방이 있다. 동쪽 방에는 왕과 왕비의 유골을, 서쪽 방에는 그 외의 가족들의 유골을 안치했으며 가운데 방은 유골을 닦기 전까지 시신을 안치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오키나와 전통 방식의 무덤인 破風墓(하후하카)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破風墓(하후하카)란?
오키나와 특유의 묘지. 일반적으로 집 위에 삼각형 모양의 지붕을 얹은 형태이다. 오키나와 전쟁 때에 방공호로도 쓰였을 만큼 공간이 넓은 것이 특징이다. 류큐 왕조시대에는 왕족에게만 허락되었지만 1879년부터는 일반 시민들에게도 허용되어 현재는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묘지 형태이다.
*金城町の石畳道(긴조초 돌판길)
류큐 왕조시대 슈리와 항구를 잇는 도로로 건설된 真珠道(마다마미치)의 일부이다. 당시에는 약 10km에 이르렀으나 오키나와 전쟁 때 대부분이 파손되었고 지금은 약 300m 정도만 남아있다.
류큐 석회암이 깔려있는 길 옆으로 붉은 기와집들이 늘어선 풍경은 일본의 길 100선에도 선정될 만큼 운치 있다.
군데군데 가파른 구간이 있으며 비 오는 날은 미끄러우니 길을 걸을 때 주의해야 하며 지칠 때는 오래된 민가를 활용한 무료 휴게소 金城村屋(킨조무라야)에서 쉬었다 가면 된다.
*識名園(시키나엔)
류큐 왕조의 오랜 별장. 국왕 일가가 휴양을 즐기거나 귀한 손님을 접대하던 곳이다. 18세기 말 건설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 건물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가 1975년부터 약 20년에 걸쳐 복원했다. 연못 주위를 돌며 경치의 변화를 즐기는 일본 회유식 정원이지만 가운데는 중국식 정자 육모정이 있고 연못 주위는 류큐 석회암으로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
간코다이에 오르면 오키나와 남부 지역이 내려다보인다. 바다가 보이지 않는 오키나와에서는 희귀한 전망으로 류큐 왕국이 작지 않음을 알리기 위해 중국 책봉사에게 보였다고 한다.
3.신도심
원래 미군기지·미군 주거지가 있던 지역. 1987년 5월 일본에 전면 반환된 뒤 재개발에 들어가며 신도심이라 불리게 되었다. 지금은 대형 쇼핑센터와 방송국, 현립 박물관, 미술관, 공원 등이 들어서 있다.
*沖縄県立博物館·美術館(오키나와현립 박물관·미술관)
오키나와의 자연과 역사,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 선사시대부터 류큐 왕국의 번성기, 참혹한 오키나와 전쟁과 미국 통치 시절 등 오키나와가 걸어온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오키나와의 자연과 생물을 관찰할 수 있는 자연사 전시실, 생활습관을 알아볼 수 있는 민속 전시실, 오키나와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는 미술공예 전시실 등 볼거리가 풍성하다.
오키나와 출신 작가를 중심으로 다양한 회화, 조각, 공예품 등을 전시하는 미술관도 볼 수 있으며 후레아이 체험실에는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놀면서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도구가 준비되어 있다.
*T ギャラリア沖縄(T갤러리아 오키나와)
오키나와의 유일한 시내 면세점. 규모는 작지만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고 싶다면 방문해보는 것을 추천. 공항 면세점은 입점 브랜드의 수가 훨씬 적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입점 브랜드가 많은 시내면세점을 방문하는 것이 볼거리가 많기 때문이다.
구찌, 디올, 로에베, 루이비통, 미우미우, 발렌시아가, 프라다, 펜디 등의 패션 브랜드와 오메가, 불가리, 까르띠에 등의 주얼리 브랜드를 볼 수 있으며 자세한 브랜드 리스트는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매장별로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과 면세점 구매 합산액으로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곳으로 나뉘고 있으니 건물 지도를 참고해 쇼핑하는 것이 좋다.
*那覇メインプレイス(나하 메인 플레이스)
나하 최대의 쇼핑센터. 국제거리가 관광객을 위한 곳이라면 나하 메인 플레이스는 오키나와 현지 사람들의 쇼핑 장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오키나와에서 가장 큰 쇼핑센터였으나 2015년 이온몰 라이컴이 오픈하면서 두 번째로 밀려났다고 한다.
각종 패션 및 잡화점, 레스토랑을 비롯한 영화관과 게임센터, 푸드코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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